충청북도 충주시에는 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의 오래된 세거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더불어 발전해 온 이 가문의 역사는 충주 지역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다.
1.전주이씨의 유래와 계보적 특징
전주이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성씨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태조 이성계를 배출한 왕실의 본관으로 유명하며, 한국사의 핵심 가문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시기에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분파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성계의 증조부인 목조 이전의 계보는 문헌으로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역사학적으로 다양한 해석과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방대한 세거 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왕가의 초기 계보가 선명히 전하지 않는 특이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전주이씨는 120여 개가 넘는 파(派)를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은 조선 왕실의 대군 또는 군을 파조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 파 가운데 ‘효령대군파’는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 이보를 파조로 합니다. 이보는 원경왕후 민씨 소생으로, 조선 초기 왕실 구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효령대군의 후손들은 조선 중기 이후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가 관료, 유학자, 효행 인물,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지역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는 다른 분파에 비해 충청 지역과의 인연이 깊으며, 충주 지역의 세거지는 이 계통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합니다. 조선 시대 사헌부장령 이유양, 임피현령 이득양 등 지역 출신 인물을 배출한 가문도 효령대군파 계통입니다. 또한 가문에서 배출된 여러 효자·효부 인물들은 유교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조선 사회에서 크게 존중받았으며, 그 기록이 지역 민속과 함께 남아 전통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주이씨의 계보는 왕실의 역사뿐 아니라 각 지역 사회의 구성과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으며, 충주 세거지는 그 흐름을 현재까지 고스란히 이어 오고 있습니다. 전주이씨의 연원을 이해하는 것은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2.충주로의 입향 과정과 세거의 형성
전주이씨 효령대군파가 충주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은 임진왜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효령대군의 7세손인 이호는 전란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 이요빈의 삼년상을 치르며 잠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상(喪) 기간이 끝난 후 그는 산수가 수려하고 지세가 안정된 곳을 찾던 중 지금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이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거주 이전이 아니라 가문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하천리는 예로부터 물이 맑고 주변 지형이 안정적이며, 농경과 생활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 유교적 이상향에 가까운 지세를 갖고 있어, 가문의 세거지로 선택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호의 이주는 당시 가문 구성원들에게 안정된 삶의 터전을 제공했고, 후손들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 기반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충주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조선 시대 내륙 교통의 중심지에 가까워 지역 경제와 문화가 비교적 활발하게 교류하던 곳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효령대군파 후손들은 관직 진출과 학문적 기반을 다지는 데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충주 세거지에서 배출된 인물들은 지방관, 학자, 효행 인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이호 이후 후손들은 충주 지역에서 대대로 세거하며 가문의 위상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효자를 기리는 정려, 효부를 기리는 비석 등이 지역 곳곳에 세워졌으며, 이는 단순한 가문의 기록을 넘어 지역 사회의 생활 문화와 사회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호의 충주 입향은 가문의 흐름이 바뀌는 결정적인 사건이었고, 이후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는 충주를 중심으로 세거를 이루며 지역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충주에서의 현황과 남아 있는 유적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는 오랫동안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를 중심으로 세거해 왔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기준 충주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4,704가구 14,808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지역사회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입니다. 다만 세거지였던 하천리는 수몰로 인해 거주민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수몰 이전에는 108가구 542명이 거주했으나, 1990년에는 40가구 139명으로 줄었고, 2008년 기준으로는 15가구만이 남아 전통적 세거지가 크게 축소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주 곳곳에는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의 역사적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천리 전주이씨 사정문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유양의 처 풍산홍씨, 효자 이서·이적, 이서의 처 파평윤씨 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로, 지역 유교 문화와 가문의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사정문은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국실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까지도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철재의 처 경주김씨의 효부비와 이대재의 송덕비가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번지에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비석들은 조선 시대 지역 사회에서 효행과 덕행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유물입니다. 아울러 사헌부장령을 지낸 이유양의 묘는 하천리 산72번지에 자리하고 있어 가문의 관직 전통과 지역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습니다.
충주 지역에 남아 있는 전주이씨 유적들은 단순히 특정 가문의 기록물이 아니라, 지역 역사·문화·생활양식을 함께 담고 있는 종합적 문화 자산입니다. 특히 효행 관련 비석과 건립물들은 조선 시대 지역사회의 가치관과 생활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 분석 가치 또한 높습니다. 현재 후손들은 이 유적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가문의 전통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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