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과 청풍 지역에는 고려 말부터 이어져 온 청풍 김씨의 깊은 뿌리가 남아 있습니다. 세거 성씨로서 오랜 역사적 흐름과 함께 중앙 정계에서도 활약한 가문의 발자취는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1. 시조 김대유와 청풍 김씨의 계보 형성
청풍 김씨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김대유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정구의 17세손으로 전해지며, 고려 말기 혼란 속에서도 문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입니다. 그는 청성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후손들이 이를 본관으로 삼아 ‘청풍 김씨’라는 성씨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시조 김대유의 묘소는 과거 청풍부 도전리에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실전되어 후손들이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시조 제단과 단비를 세워 제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조 이후 청풍 김씨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관직 체계를 기반으로 가문의 위상을 점차 확립했습니다. 특히 고려 말기에 영동정을 지낸 김충, 이어 조선 초기 집의를 역임한 김직방과 김광무, 현감을 지낸 김효례로 이어지는 중앙 관인 계열은 가문의 기반을 든든히 다졌습니다. 이후 조선 초기에는 공신으로 이름을 남긴 김길통과 그의 아들 김순명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과거 급제와 군공을 통해 조선 전기 중앙 정치에서 활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풍 김씨는 지역의 유력 사족 가문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시조 계열 이후 지방에서 지속적으로 관직자를 배출하는 토착 사족 가문과 다르게, 청풍 김씨 본가 계열은 지역 기반의 사마시 입격자나 고위 관직자를 꾸준히 배출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대신 이들은 충주, 영주, 수원, 양주, 안동, 청주, 전주 등 전국으로 흩어지며 재경 관인 계층으로 성장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는 가문의 성장 방식이 지역 중심이 아닌 중앙 중심으로 변화했다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청풍 김씨는 전국적으로 매우 강력한 관료 가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사마시 입격자가 240명, 문과 급제자가 101명에 이를 정도이며, 이는 조선 시기 유력 사족 가문의 대표적인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제천·청풍 지역에서 사마시 입격자를 배출한 사례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이들이 지역 기반보다는 중앙 정치 중심의 재경 사족으로 재편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한편 김숙필–김식 계를 중심으로 한 분파는 명성왕후와 효의왕후를 배출하는 등 왕실과도 깊은 연관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열 역시 서울 거주를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지역적 뿌리보다는 중앙 중심의 가문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2. 제천·청풍 지역으로의 세거와 인구 변화
청풍 김씨는 본래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재경 사족의 성격이 강했지만, 제천과 청풍 지역에도 오랜 세거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시조 제단이 있는 제천 수산면 도전리 일대는 청풍 김씨의 정신적 근거지로 여겨지며,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참배해 온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1964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풍면에는 99세대, 수산면에는 52세대, 덕산면에는 68세대의 청풍 김씨 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당시 제천 지역에서 청풍 김씨가 주요 세거 성씨 중 하나였음을 보여줍니다. 1998년 작성된 마을지 자료에서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수산면 도전리 등지에 지속적인 거주 흔적이 확인됩니다.
다만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인구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최근 현황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2000년 기준 제천시에 거주하는 청풍 김씨는 538가구 1,598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지역 기반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비록 시조 직계나 주요 관직자를 배출한 중심 계열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하며 재경 사족화되었지만, 제천 지역에는 여전히 본관을 중심으로 한 세거 공동체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세거 성씨로서 청풍 김씨의 제천·청풍 정착은 단순한 거주를 넘어 지역의 문화적 기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향교 활동, 유림 사회 구성, 지역 문화재 보존 등에 기여하며 지역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함께 이끌어 왔습니다. 특히 제천 지역은 조선 시대부터 명문가의 거주지가 다수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청풍 김씨의 세거지는 이러한 지역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청풍 김씨 관련 유적과 문화적 의미
제천과 청풍 지역에는 청풍 김씨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여러 유적이 존재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봉강서원입니다. 봉강서원은 1639년 김식(金湜)·김권(金權)·김육(金堉)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당시 유림 사회에서 명문가의 위상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서원은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약 231㎡가량의 터에 기와집 형태로 존재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현재 서원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주변 지형과 마을 구조를 통해 당시 서원의 규모와 영향력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몰로 인해 과거의 지형이 바뀌었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일대가 서원 터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청풍 김씨가 이 지역에서 남긴 교육·문화적 자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입니다.
또한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는 시조 김대유를 기리기 위한 구단비와 신단비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시조의 실전된 묘소를 대신해 후손들이 조성한 제단으로, 청풍 김씨 가문이 조상을 기리고 정체성을 지켜온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단소 주변에는 두 기의 묘소가 함께 관리되고 있으나 봉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후손들이 함께 참배하는 독특한 구조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원각(淸源閣)은 시조 제단을 참례하러 온 후손들의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가문의 제향이 단순한 의례가 아닌 공동체적 활동으로 자리 잡아 왔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시설은 세거 성씨로서 청풍 김씨가 지역과 함께 발전해 온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청풍 김씨 관련 유적들은 가문의 역사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정체성, 조선 시대 교육·유학 문화, 향촌 사회의 구조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자료입니다. 향후 문화재적 가치 평가와 유적 보존을 통해 지역 역사 연구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